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공훈 배우
1915-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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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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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 영혼과 몸을 극장에 바쳤다.
1937년 5월 5일. 폭풍우가 몰아치면 예술가들과 모든 극장 소품이 타고 있던 바지선이 예인선에서 찢어져 넓은 바다로 옮겨졌다. 김호남은 밧줄로 몸을 묶은 채 얼음물에 몸을 던지고 예인선까지 헤엄쳤다. 파도는 즉시 무모한 자를 삼켰다. 그는 사람을 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 “, – 김 이오시프의 책 “소련 고려 극장”의이 대사는 무대 위의 극장과 형제들에 대한 김호남의 성격과 헌신을 충분히 표현한다. 김호남은 개그맨으로 두각을 나타낸 오리지널 아티스트다. 재능있는 코미디언은 항상 지칠 줄 모르는 유머와 낙관주의로 구별되었다. 김호남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곧바로 긍정적인 감정을 쏟아냈다. 스케치에서 그의 변함없는 파트너는 못지않게 뛰어난 예술가 이영수, 진창화였다. 청중은 특히 그의 독백 “나이 든 남편”, “재수 없는 독신자” 등을 좋아했다. 김호남은 반짝이는 유머와 풍자를 미묘하게 결합하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대화형 예술가일 것이다. 그의 독백에서 그는 아첨꾼과 관료를 “철거”하고 사람의 부정적인 측면을 알아 차리고 청중의 웃음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켰다. 아 아르부조브의 “여섯 며의 사랑한 남자”의 다람쥐, 셰익스피어의 “오텔로”의 로드리고, 태장춘의 “흥부와 놀부”의 혹등, 채영의 «돌이와 순탄»에서 김진사의 김호남이 만든 이미지는 감사하는 시청자의 기억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1966년 김호남은 카자흐스탄 공화국 공훈 배우 칭호를 받았다.